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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의 아버지의 초상<자전거 도둑>

바람분교장 2009. 5. 22. 11:27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 자전거 도둑

자본주의 사회의 아버지의 초상

 

                                                                       Written by  한승태

 

 

 

미국의 금융 파산으로 인해 자본주의, 정확히는 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종말을 성급하게 고하는 경제학자들도 나오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계획경제와 높은 관세정책을 유지하며, 고성장을 이루었던 서구 산업자본들이 조폭 같은 그 큰 덩치로 시장이라는 링 위에서 맨살을 드러내고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반짝이던 개발도상국에게 시장경제 하에서 공정하게 싸우자고 싸움을 건지가 근 40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  지본주의 폐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회의하는 것은 아니다. 보완적 성격의 논의들이다.

이즈음 우리들에게 <자전거 도둑>은 매우 의미심장하게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가족을 돌아보게 한다. 자본주의는 가족이라는 기초 경제 단위에서 시작한다.

 

 

영화의 처음은 어느 직업소개소에서 시작된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광장에 모이고, 그곳에서 직업을 구해주는 사람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분배한다. 그러나 사람들에 비해 일자리는 턱 없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주인공 안토니오 역시 그 사람을 통해 일자리를 얻게 된다. 그의 일은 벽에다 포스터를 붙이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안토니오는 곤란에 빠지게 된다.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전거가 필요하지만 안토니오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전당포에 자전거를 맡긴 것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쉽게 포기할 수 없기에 아내에게 사정이야기를 한다. 안토니오의 아내 마리아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집에 있던 침대보를 팔아 돈을 마련하여 전당포에서 자전거를 찾게 한다.

자전거를 찾은 안토니오는 자전거를 들고 다닐 정도로 기뻐하고 아내, 그의 아들 부루노 또한 자전거를 닦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자전거를 찾아 집으로 가던 도중 아내는 점집에 들리게 된다. 안토니오에게는 금방 돌아올 테니 문 앞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마리아는 2 층으로 올라간다. 잠시 기다리다가 안토니오는 조바심이 났는지 밖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잠시 자전거를 맡긴다.

여기서 영화제목이 자전거 도둑이라는 사실을 아는 관객들은 자전거를 누가 훔쳐갈거라고 예상했을 것이고 나 또한 그랬었다. 그래서 긴장이 살짝 고조되고 스크린에 자전거가 살짝 보이고 안토니오는 2층으로 올라간다. 아내는 점을 보고 있었다. 역시 어느 시대이던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인간의 불안감은 점과 같은 것을 통해서 위안 받고 싶었나 보다.

 

 

 

전후 사회의 빈곤과 모순을 리얼한 영상으로 묘사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작품인 <자전거 도둑>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계속 그 평가가 이어지고 있고, 대체로 네오리얼리즘의 이론을 가장 훌륭하게 대변하고 있는 영화 중의 하나라는 평가이다.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기본적인 표현양식인 로케이션 촬영, 그리고 비직업 배우의 기용, 현실의 사전들을 나열하는 듯한 화면구성과 카메라 이동이 돋보이며, 이후 이태리 네오리얼리즘 영화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인식되었다.

 

 

<자전거 도둑>은 이렇게 전쟁 후 이탈리아의 참담한 굶주림이라는 현실 속에서 가장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보통 사람의 안토니오가 도둑이 되어가는 모습을 추적하는 과정 속에서 그 어느 것도 선악이라 규정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선과 악은 그 사회 속에서 규정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전거 도둑>은 사회 속에서 절망한 가정과 그를 자전거 도둑으로 만든 전후 이탈리아 상황을 잘 그렸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