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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의 그림자, 조나단 드미 감독의 <양들의 침묵>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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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성의 그림자, 조나단 드미 감독의 <양들의 침묵>

바람분교장 2008. 10. 18. 15:08

 

 

  

조나단 드미 감독의 <양들의 침묵>

남성성의 그림자 아래서

 

 

                                                                             Written by 한승태

 

 

이 영화는 수습 FBI요원 스탈링Starling이 엽기적인 살인마를 또 다른 식인 살인마의 도움으로 잡게 된다는 심리 스릴러물이다. 영화는 FBI의 수습요원 클라리스 스탈링이 내면의 위크포인트(weak point)를 극복하면서 살인마를 체포하여 FBI수사요원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 있다. 그러나 나는 스털링보다는 조력자이면서 또 다른 안타고니스트인 한니발 렉터 박사의 연기와 역할에 매력을 느낀다.

 

대부분의 이러한 영화에서 조력자는 동료 형사이거나 소위 선한 인물로 그려져 왔다. 또한 이 영화는 버펄로 빌을 잡으려는 것이 목적이긴 하지만 스탈링과 렉터 박사의 고도의 심리전으로 관객은 두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으로 정신없이 영화를 따라간다. 이 두 사람의 갈등과 대립으로 따라가다 보면 범인을 잡게 되는데, 범인을 잡고도 렉터 박사의 도주는 미해결로 남겨둠으로써 캐릭터 중심의 영화로서 성격을 분명히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양대 축은 스탈링과 버팔로 빌이 아니라 렉터 박사이며 이 둘 간의 긴장이 영화의 큰 구조를 이루며, 이들이 해결하는 범죄사건이 이들의 캐릭터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영화의 처음은 스탈링이 내적으로 극복해야 위크포인트를 보여준다. 그녀가 FBI의 훈련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힘겹게 훈련장을 뛰며 장애물을 넘는다. 그러나 결코 여전사의 모습은 아니다. 첫부분 내내 클라리스 스탈링이 연약한 여자라는 사실은 강조한다. 이것을 극복해고자 하는 것이 스탈링의 내적갈등을 이룬다. 훈련장에서 힘겹게 달리는 모습에서 그녀가 갖고자하는 덕목을 영화는 푯말을 통해 보여준다. ‘상처, 고뇌, 고통을 사랑하라’ 이것은 그녀가 여자로서의 연약한 육체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그녀의 내적욕망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남자 요원과의 훈련에 뒤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또 하나는 범죄심리학을 전공한 전문가로서의 지적 여성성의 확보이다. 즉, 남자로부터의 동료로 인정받는 것이 그녀의 내적 욕구의 하나이기도 하다.

 

 

어느 날, 그녀는 존경하던 상관 크로포드로부터 살인 사건의 자료조사로 비슷한 경향의 살인마인 한니발 렉터 박사를 면접하고 오라고 명령받는다. 경찰은 '버팔로 빌'이라고 별명이 붙여진 살인범에 대한 아무런 단서를 잡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 살인사건은 피해자가 모두 몸집이 비대한 여성들이고 피부가 도려내어져 있다는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 외적 상황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진행되는데,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크로포드는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만한 인물, 바로 한니발 렉터 박사를 통해 정보를 얻기 위해 그녀를 보낸다. 그로부터 살인사건의 단서를 얻어내는 것이 그녀의 임무인 셈이다.

 

 

 

이 영화의 강력한 조력자이면서 안타고니스트로 등장하는 한니발 렉터는 일명 '식인종 한니발'이라고 알려진 흉악범으로 죽인 사람의 인육을 먹는 흉측한 수법으로 자기 환자 9명을 살해하고 정신 이상 범죄자로 정신병동에 수감 중인 전직 정신과 의사이다. 어떻게 보면 심리학을 전공한 스탈링에게 이 렉터 박사는 극복해야할 남성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크로포드의 경고에 의하면 한니발은 남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의 대가로 그녀가 상대하기에 벅찬 인물로 그려진다. 즉 장애물이 강력할수록 갈등도 커지고 극복의 쾌감도 커지며 흥미도 증가한다. 따라서 한니발 렉터는 스탈링의 장애물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녀의 내적, 외적 갈등을 돕는 강력한 조력자라는 재미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렉터는 스탈링과 처음 만나자마자 그녀의 체취와 옷차림, 그리고 간단한 말 몇 마디로 그녀의 출신과 배경을 간파해 그녀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내색 않고 침착하고 재치 있게 주어진 상황을 분석하는 스탈링에게 렉터는 호감을 보인다. 따라서 적대자이며 조력자의 역할을 자처하게 되는 것이다. 방탄유리를 두고 렉터와 대화를 하는 동안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스털링은 탁월한 분석과 세심한 매너와 고상한 취미를 가진 그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한니발 렉터 박사의 눈빛은 정말 강렬하다. 이런 눈빛과 저음의 목소리로 상대방의 심리를 다 파악하고 있다는 듯한 미소는 오히려 한니발 렉터의 은밀한 광기를 드러낸다. 치밀한 논리와 명민한 분석을 하는 렉터의 모습에서 단순한 살인마보다 더한 공포를 드러내지만 그로인해 묘한 매력을 획득한다. 스탈링 요원과 렉터 박사의 대화는 이들의 심리전을 보여주는데, 수수께끼와 같지만 곳곳에 힌트를 드러낸다. 이를 통해 모르는 것에 대한 심리적인 공포가 생기는데, 그것이 이 영화가 갖는 묘한 매력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든 분위기는 한니발 렉터와 클라리스 스탈링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렉터의 똑바로 바라보는 깊은 시선에서 그는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과거 사소한 사건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서 현재의 갈등(외적 갈등으로서 FBI수사요원이 되고자 하는 것)을 해결하고, 그녀의 내적 욕구가 무엇인지 그는 정확하게 분석해 내면서의 그녀의 위크포인트weak point가 무엇이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을 스탈링과 게임하듯 제시한다.

 

묘한 승리자의 미소, 그의 캐릭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력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렇게 캐릭터 한 명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다. 배우와 캐릭터가 가장 잘 맞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영화의 중반은 또 다른 희생자로부터 시작한다. 상원의원의 딸 캐더린이 납치되면서 수사당국은 빗발치는 항의를 받게 되고, 범인의 체포에 전국의 관심이 쏠리게 된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렉터는 자신의 수감생활을 편하게 해달라는 조건을 내세우며 스털링의 조바심을 부추긴다. 스탈링은 거짓으로 조건수용을 약속하지만, 정신병동의 담당의사 프레더릭 칠튼은 이를 엿듣고 자신의 출세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결국 범인의 정체를 알려준다는 조건으로 렉터는 멤피스로 호송되고, 스탈링은 수사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는 정신과 전문의면서 식인 살인마 렉터의 팽팽한 신경전 속에서도 점차 사건의 실마리는 하나씩 풀려나간다. 범죄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렉터의 날카로운 분석과 추리에 범인의 정체와 거처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렉터는 쉽사리 해답을 주질 않는다. 그리고 렉터는 후송경관의 얼굴 가죽을 벗겨내는 끔찍한 사건을 저지르면서 탈출에 성공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렉터 박사와의 최종 면담에서 얻은 '나방' 힌트로 희생자 캐더린이 죽기 전에 구출해야 된다는 집념으로 스탈링은 홀로 수사한다. 나방의 힌트를 통해 그녀는 인피를 재봉질 하여 여성으로 변신하려는 범인의 은신처를 추적한다. 결국 스탈링은 숨 막히는 범인과의 대결 끝에 범인을 사살하고, 무사히 캐더린을 구해낸다.

 

 

 

 

여성연쇄살인사건 해결 이후 훈련과정을 무사히 마친 스털링은 FBI로부터 졸업과 동시에 정식 수사관에 임명된다. 즉 갈등의 해결은 그녀의 과거와 관련된 연약한 여성성을 극복하려는 스털링과 오히려 성전환수술의 거절로 여성의 인피로 여성으로 변신을 꾀하는 버팔로 빌의 대결로 스탈링의 외적, 내적 갈등을 해결하게 된다. 이로서 스털링은 자신의 위크포인트인 양들의 도살장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도망하고 싶어하는 연약한 여성성을 극복하고 외적갈등인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화려하게 변신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의 변신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남성이 여성으로 변신하려는 것이나 여성이 남성으로 변신하려는 것은 무슨 차이인가! 이 둘을 부정하자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초보자에서 전문가로의 변신처럼 그려지는 여성성과 남성성은 고민해 볼 문제다. 왜냐하면 누구나 인간은 여성성과 남성성을 가지며, 살인의 충동과 이를 대처하는 이성의 자제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은 한몸이다. 가려진 것이 본질이라는 철학자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클라리스에게 양들의 울음은 과연 들리지 않을 것인가?

 

** 이 포스터는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한편 한니발 렉터는 완벽하게 탈출하여 자신을 괴롭혀왔던 정신병동의 의사 프레더릭 칠튼을 추적하고, 이로서 2탄을 예고하는 서비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