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쓰나미를 몰고오는 소녀 포뇨와 미야자키 하야오/한승태 본문
Written by 한승태
2008년 12월 말에 개봉한 미야자기 하야오 감독의 <벼랑 위의 포뇨>의 작품을 살펴보자. <이웃의 토토로>, <월령공주>,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수 많은 애니메이션으로 감동을 선사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이다.
우선 기대를 가지고 봤다. 이런 걸 긍정의 효과라고 해야 하나?
감독은 여행 중 바닷가 절벽에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를 바라보던 소년을 모티브로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 소년의 상대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한 인면어, 혹은 인어라고 불리는 ‘부른힐데’이다. 바그너의 오페라 발키리에서 하늘을 달리는 여인 중 ‘부른힐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지만, 남주인공 소스케가 이름 지은 ‘포뇨’라는 이름은 감독이 직접 지은 이름으로 목욕탕용 장난감 금붕어를 만져보다 작명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포뇨’는 고무공을 만질 때의 탱탱한 느낌을 표현하는 일본식 감탄사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작품의 배경은 바다 속과 해안 절애 위의 아담한 집, 그리고 바닷가 양로원이다. 영화의 살아 숨 쉬는 바다, 마법이 태연히 모습을 드러내는 세계, 그리고 물결과 생명이 서로 소통하는 공간으로서 바다는 배경이 아니라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이야기는 ‘포뇨’를 따라 자연스럽게 바다 속에서부터 인간 세상인 바닷가로 연결되어 환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판타지물임을 보여준다.
바다 속 농장의 풍성한 생명들을 기르는 붉은 머리의 용왕(?) ‘후지모토’는 파란색 줄무늬 슈트에 분홍색 스카프, 흐트러진 붉은 머리에 초췌한 인간의 모습으로 비밀을 간직한 바다의 주인이다. 그는 바다의 생명을 기르며, 물과 공기가 오염된 인간 세상에 나가려는 말썽꾸러기 ‘부른힐데’ 때문에 안절부절못한다.
그러나 어느 날, 후지모토의 수많은 딸들 중 맏이인 ‘부른힐데’가 호기심에 따분한 바다 속을 몰래 빠져나와 해파리를 타고 바깥세상을 구경한다. 세상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모험심이 충만한 ‘부른힐데’는 입으로 물총도 쏘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해야만 하는 어린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랑스런 물고기 소녀이다. <이웃의 토토로>를 사랑한 관객이라면 포뇨의 모습에서 ‘메이’의 모습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물 밖 세상에 처음 나온 ‘부른힐데’는 해변의 벼랑 위에 사는 소년, 소스케를 처음 보게 된다.
아버지가 마도로스인 소스케는 엄마와 함께 화물선을 타는 아빠를 기다리며 늘 바다를 동경한다. 다섯 살이지만 아빠와 모스부호로 통신도 하는 등 영리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훈남으로 미래소년 ‘코난’을 닮기도 했다.
때마침 해변가에 놀러 나온 소스케는 그물망에 휩쓸려 유리병에 끼인 ‘부른힐데’를 발견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병을 깨다 손가락을 베어 피가 난다. 그리고 여기서 소년의 피를 먹은 ‘부른힐데’는 운명이 변하게 된다. 영화는 이렇게 우연히 만난 소스케를 사랑하게 된 ‘부른힐데’가 소스케의 상처에 난 피를 먹음으로써 인어에서 점점 사람 ‘포뇨’로 변모해 가는 이야기이다.
‘포뇨’는 소스케와 터프한 운전솜씨를 자랑하는 소스케 엄마 리사의 집에서 즐거운 육지 생활을 시작한다. ‘포뇨’가 없어진 것을 안 후지모토는 ‘포뇨’를 찾아 다시 바다로 데려가지만, 인간의 피를 마신 포뇨의 변신을 막는 그의 마법은 한계가 있다. 여동생들의 도움으로 탈출한 ‘포뇨’는 인간의 여자아이로 변신하고, 거대한 파도(동생들)와 함께 ‘소스케’에게로 향한다.
감독은 소년과 소녀, 사랑과 책임, 바다와 생명, 이러한 자연의 것들을 서슴없이 그려내어, 요즘 같이 힘든 시련과 여러 변화에 다소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즐겁고 행복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전 작품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진다. 이 영화의 프로타고니스트는 인간이 되고자 하는 포뇨와 그런 포뇨를 지켜주고 싶은 소년 소스케이다. 그렇다면 포뇨의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오염된 인간세상의 물과 공기 때문에 걱정이 많은 아빠 후지모토에 의해 가로막히며 긴장이 발생한다. 그러나 포뇨를 지켜주고 싶다는 소스케의 소박한 욕망은 그저 바램이고, 기다리는 것 밖에 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이 영화의 긴장은 포뇨가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을 말리는 후지모토와의 갈등만 존재한다. 그렇다면 안타고니스트의 위치에 있는 후지모토가 하고자 하는 일은 오염되고, 불길한 인간 세상을 끝내고 캄브리아기 같은 생명의 대폭발을 일으켜 바다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 그런 후지모토의 의도를 본의 아니게 포뇨의 호기심이 방해를 하는 것이다.
포뇨의 이런 호기심과 소스케와의 사랑이 인간에게 다가올 재앙을 막는다는 식으로 포뇨의 엄마을 설정하고 있으나, 오히려 포뇨 엄마의 신적 해결이 약간은 어리둥절하게 한다. 생명의 신 ‘그란 만마레(포뇨 엄마)’가 등장하여 갈등을 해결하고 있으나, 이건 어린아이들에게나 먹힐 수 있는 동화적 갈등 해결이다. 그런 것으로 보아 이 작품의 타깃은 철저히 유아용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 동력은 적극적인 포뇨와 소스케의 엄마 리사로 보인다. 이들은 미야자키가 늘 보여주는 전사로서의 여성은 아니지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여성상이다. 집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 마도로스인 남편을 대신해 소스케를 키우고, 남편 때문에 다혈질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양로원의 할머니들을 따뜻하고 싹싹하게 보살피는 리사는 쓰나미도 무서워하지 않는 강인한 여성이다. 그래서 육지에서의 이야기는 리사에 의해 이끌리고, 바다에서는 포뇨가 이끌고 있다. 그래서 소스케의 수동성이 돋보인다.
이 영화의 중반, 소스케의 피를 먹은 포뇨로 인해 바다의 결계가 풀리고 생태계가 무너지고, 포뇨의 동선이 바다에서 육지로 옮김에 따라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데, 이는 후지모토가 모으던 바다의 생명수가 포뇨에 의해 대폭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리사가 일하는 양로원의 ‘오키’ 할머니는 ‘포뇨’를 보고 인면어가 폭우와 해일을 몰고 온다며 포뇨를 멀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압권이라 할 수 있는 파도 위를 달리는 포뇨의 천진난만함으로 인해, 포뇨 어머니 ‘그란 만마레’가 신적 해결을 시도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의 주제를 생각해보자면 쓰나미와 대홍수는 당장 인류에게 재앙일지 모르지만 새로운 생명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재앙이 생명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들과 같은 순수한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메시지는 아닐까?
<이웃집 토토로>의 호기심 많은 4살 소녀 ‘메이’를 비롯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캐릭터를 기억하는가? 동그랗고 오동통한 배와 조그마한 입술에 붉은 머리색을 가진 독특하고 앙증맞은 포뇨를 사람과 물고기의 형태를 띤 신비스런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보다 많은 셀화를 이용해 활기차고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로 완성해 냈다.
이처럼 소스케를 만난 후 인간이 되고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포뇨의 모습은 영화 <벼랑 위의 포뇨>를 감상하는 주요 포인트이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라앉은 도시에는 또 다른 재미와 볼거리를 선사한다. 가라앉은 도시의 투명한 물 사이로 보이는 희귀한 모습의 고대 데본기 시대에서나 볼 수 있는 다양한 고대어들이 그것이다. 또 도시가 가라앉는다는 것은 비극성을 띄기도 하지만 일상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환상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감독은 영화 <벼랑 위의 포뇨>를 인간의 따뜻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 연필로 한 컷 한 컷 본인이 손수 그린 그림으로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오늘 날 대부분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기계적인 애니메이션과 달리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 생각한다.” 는 감독은 연필로 그린 그림이 여러 스텝들의 노력과 땀으로 영화로 탄생하는 것은 ‘마법’ 같은 일이었다며 수작업 애니메이션에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제작도 100% 수작업으로 완성해 낸 17만장의 셀화로 완성했다. 이런 수작업 애니메이션을 보는 재미가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긴장이 많이 풀어진 작품이었지만 어린이의 시선으로 본다면 그래도 봐줄만한 작품인 것은 사실이다.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 > 애니메이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니메이션박물관 이야기1 (0) | 2009.06.10 |
---|---|
비비디 바비디 부(Bibbidi Bobbidi Boo)가 뭔 뜻이야?/한승태 (0) | 2009.02.18 |
유럽 장편 애니메이션 <니코>/한승태 (0) | 2009.01.22 |
스머프를 소개합니다/한승태 (0) | 2008.12.09 |
케로로 더 무비 : 케로로 vs 케로로 천공대결전 (0) | 2008.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