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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가물거리는 그 흰빛

바람분교장 2008. 8. 11. 21:49
 

 가물거리는 그 흰빛

이근일


  병원 침대에 눕자마자 내 얼굴 위로 흰빛이 쏟아진다 심전도기계 위로 드르륵 종이가 말려 올라오는 동안 나는 내 양 옆구리에서 길게 돋아난 핑크빛 지느러미를 보았다 잠시 심해 속을 유영하는 나를 떠올렸던가, 불현듯 내 안에서 고래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과거의 어느 시간을 품은, 심장 속 그 한 방울의 피로부터 누군가를 부르는 간곡한 울음소리가

  전생에 나는 분홍고래가 아니었을까 일생 동안 깊은 바닷속을 누비며 이를테면 암초 위에 착생하는 산호;그가 살면서 촉수에 머금는 독에 대해서라거나, 사랑에게 버려진 채 그 독 속에 숨어 지내는 어떤 神의 아픔에 대하여 슬픈 빛깔의 온몸으로 노래하던, 그때도 너는 내 안에 가득 고인 어둠이 두려워 기어이 나를 배반했을 것인가, 울음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사이 내 감은 눈 속으로 캄캄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고
        
  바닷속 나는 흰빛을 따라가고 있었다 저만치 그 흰빛은 너의 얼굴을 닮고, 또 네 고운 목소리를 닮은 듯했다 그러나 내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너의 얼굴을 조금씩 뭉개고 지우던 흰 빛, 침묵하며 멀리멀리 달아나던 그 흰빛, 나는 지쳐서 점점 해저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때 간호사가 다가오고 심전도기계가 작동을 뚝 멈췄다 순식간에 내 눈꺼풀 밖으로 바닷물이 다 빠져나갔지만, 나는 한동안 그대로 누운 채 맥없이 파닥거렸다, 침대였던가 뻘이었던가, 가물거리는 그 흰 빛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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