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숫/박제영 외 본문
숫
그곳에서는 옷을 벗어야 한다
아버지라는 옷
남편이라는 옷
아들이라는 옷
관계를 위한 모든 옷을 벗어버리면
남은 것은 오로지 '숫'만 남는다
'벌거벗은 숫'만 남는다
벌거벗은 숫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명상하고, 와인을 마신다 보라
벌거벗은 웃은 부드럽다
벌거벗은 숫은 명랑하다
_박제영 시집 <아흔아홉 개의 달과 아흔아홉 번의 가을> 중에서
인간이 키우는 생명까지 중성화되어 가는 이즈음 숫컷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면 집단 따돌림 당한다. 하지만 숫이든 암이든 생명 고유의 자질이 있다. 암컷이든 숫컷이라 할 때는 이름이 필요 없다. 이름 없는 존재가 '숫'이다. 이름 없는 존재가 '암(아막)'이다. 그러니 이건 생명의 기능적 표현일 게다. 암이든 숫이든 힘을 가진 것의 폐해는 모두 같다. 다만 오로지 순수한 숫이든 암은 아름답다. 명랑하다. 관계의 힘이 눌러놓은 해방이 거기 있다.(한승태)
차마고도
누구랄 것 없이 죽어라죽어라 산다
죽어라죽어라,는 문장이 산다,는 문장을 밀고
산다,는 문장이 죽어라죽어라,는 문장을 끌며
천 길 낭떠러지 구절양장 고갯길을 넘는다
죽어라죽어라,는 문장이 무너지면
산다,는 문장도 무너지는 법이다
누대로 다도를 체득한 사람들이다
_박제영 시집<아흔아홉 개의 달과 아흔아홉 번의 가을> 중에서
문장수선공다운 시다. 말의 힘이 이렇게 산다. 혼자 존재할 거 같지만 같이해야 사는 것이 있다. '숫'과 다르다. ㅎ 같이 산다는 걸, 그 험한 차마고도를 넘나들며 펼쳐놓는다. 홍차나 보이차라도 야크젓이나 염소젖에 섞어 마셔야 사는 사람도 있다. 죽어라죽어라 사는 이들 때문에 같이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그대도 살아라, 한다.(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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