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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앵두꽃을 찾아서/박정대

바람분교장 2021. 6. 22. 12:59

앵두꽃을 찾아서

 

 

앵두꽃을 보러 나, 바다에 갔었네

바다는 앵두꽃을 닮은 몇 척의 흰 돛단배를 보여주고는

서둘러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으므로 나,

사라져 가는 것들의 뒷모습을 아쉽게 바라보다가

후회처럼 소주 몇 잔을 들이켰네

 

소주이거나 항주이거나 나,

편지처럼 그리워져 몇 개의 강을 건너

앵두꽃을 찾아 산으로 갔으나

산은 또한 나뭇잎들의 시퍼런 고독을 보여주고는

이파리에 듣는 빗방울들의 서늘한 비가를 들려주었네

 

남악에서 들려오는 비가를 들으며 나,

또 다시 앵두꽃이 피는 항산을 찾아 떠났으나

내 발걸음 비장했음은, 내 마음 속으로 이미 떨어져

휘날리는 꽃잎의 숫자 많았음에랴 그리고 나,

문지방에 앉아 문득문득 앵두꽃에 관하여 생각할 때마다

가보지 않은 이 세상의 가장 후미진 아름다운 구석을 떠올리겠지만

앵두꽃을 보기에 그대만한 장소가 이 세상 또 어디에 있으랴

 

이제사 고요히 철들어 나,

앵두꽃을 보러 그대에게 가노니,

하늘 아래 새로운 사실은 없고

그 사실 앞에서 앵두꽃이 피지 않는 곳 또한 없음에랴

 

 

박정대 시집 <내 청춘의 결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중에서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앞에 앵두꽃이 피는 것은 서러워서다. 피었기 때문에 지는 것도 필연이다. 사람이 꼭 그렇다. 앵두꽃이 피는 자리는 그대이고 그대 없는 곳은 또한 앵두꽃이 피는 자리다. 그러니 그대가 없어서 또 있어서 꽃은 피느니, 아름다움은 또 다른 이름이어서 입을 다문다. 흩날리는 꽃잎 앞에 붉은 입술을 떠올리는 것은 그대를 사랑하기 때문이고 그대가 떠나갔기 때문이다. 세상 곳곳을 찾아다녀도 그대는 없고 또 그대는 있다.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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