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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이야기

봉준호 & 우라사와 나오키

바람분교장 2013. 8. 1. 19:25

두 ‘괴물’이 만난 현장을 훔쳐봤다. 한일 양국에서 매체형식은 다르지만 각자 영역에서 최고 수준에 올라있고, ‘괴물’(몬스터)이라는 작품을 갖고 있는 창작자들.
관객 1000만에 도달한 영화 <괴물>의 봉준호 감독과 일본의 국민작가로 인정받으면서 전세계에 팬을 갖고 있는 <몬스터>의 우라사와 나오키 작가의 만남.
다르게 말해보자면, 이 현장은 1000만 관객(<괴물>의 현재까지 관객동원)과 2500만 독자(<몬스터>의 일본 내 판매부수)의 만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두 사람의 팬이라면, 이 ‘괴물’들의 충돌, 그리고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향연에 흐뭇해 질 일이다.


봉준호 : 참 오랜 시간 작업하신 것 같고, 저도 6년 전에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할 때는 <해피>라는 만화를 보면서 시나리오를 썼던 기억이 나고, <살인의 추억>을 찍고 준비할 때는 <몬스터>를 보면서, <괴물>을 준비할 때는 <20세기 소년>을 봤습니다. 영화 찍을 때 항상 제 손에 들려져 있었던 책이 (우라사와 상의 책이었습니다). 항상 재밌게, 그렇게 오랜 시간 지치고 않고 작업해 오신 것이 놀랍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 괴물을 보고 기본적으로 생각이 똑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물론 태어난 장소는 달라도 머릿속은 아마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봉준호 : 우라사와 나오키 선생의 만화를 보면서 공감 내지는 느꼈던 것이 어둠이나 악에 대한 묘사를 할 때였습니다. 혹시 이 분이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에 대한 주제가 있고, 선이 악에 맞서 싸우지만 어둠과 악에 대한 매혹을 가지고 계신 게 아닌가하고. 물론 저의 상상이지만요. 저도 좀 그런 면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거든요. 특히 <몬스터> 보면서 그런 면 많이 느꼈었는데….

우라사와 나오키 : 오히려 반대일수도 있어요. 그 강한 ‘악’의 힘에 끌려가기 싫어서 항상 자신의 평상심과 평화를 찾기 위해 발악하는 느낌이랄까요.

봉준호 : <몬스터>에서 요한을 봤을 때였습니다. 1권에서 성인이 된 요한이 처음 등장하는, 공사 중인 건물에 서 있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비오는 바깥 배경을 등지고 총을 쏘는 요한의 모습이라든가, 그런 컷들이 상당히 압도적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 세상에 ‘악’과 ‘선’이 있지만, 항상 악의 힘이 너무나 압도적인 느낌이에요. 제가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서 특히 공감한 점은 주인공들이 항상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 점입니다. 먹어야지 싸울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기 때문에… 아마 감성이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봉준호 : <20세기 소년>에서도 인물들이 먹고 있는 장면, 스토리상 꼭 필요하지 않아도 먹는 장면들이 있어서 저도 좋았습니다. <괴물> 같은 경우도 누군가가 누군가를 먹인다, 보호하고 맛있는 것을 먹게 한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모티브였어요. 약한 자를 보호하고 먹인다. 영화의 라스트신도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거잖아요. 송강호가 아이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놓고 잡혀간 딸이 나타나는 판타지 장면도 있고. 먹는다는 것 자체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는가, 생존하는가와 와 닿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 영화를 보면 딸이 실종이 되고, 가족들이 울면서 장례식을 하는데 거기서 보여주는 웃음의 센스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만화 <20세기 소년>에서도 동키가 죽을 때 옆에서 스님이 밥 먹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슬픈 장면을 웃게 만들고, 웃긴 장면을 슬프게 만드는 그런 구도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봉준호 : 그런 복합적인 감정, 슬픔이나 웃음이 동시에 교차되는 그런 느낌들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같은 아시아 사람들끼리 훨씬 더 잘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깐느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도, 유럽 사람들은 합동분향소 같은 장례식장의 그런 형태 자체도 낯설뿐더러 여기서 웃어야 되는 것인가, 슬퍼해야 되는 것인가를 놓고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한국이나 아마 일본의 관객들은 반응이 다를 거 같아요. 그런 신에 대해서 섬세하게 금방 따라갈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정서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20세기 소년>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일본의 60년대, 90년대, 2000년대가 동시에 그려지는데 약간의 연도차이만 있을 뿐 어렸을 때 주인공 꼬마들이 놀았던 방식이나 디테일들이 우리가 어릴 때 놀았던 것과 너무나 비슷하거나 똑같거든요. 저도 그렇게 비밀기지 만들어서, 제가 직접 이상한 마크도 그렸어요.
그런 생생한 디테일이나 감성들이 너무 잘 통해서 놀랐어요. 교감이랄까, 그런 느낌들이 인상적이었어요.

통역자 : 선생님께서 고등학교 때 괴생물체를 보셨다고 실제로…

봉준호 : 그게 한국에서도 기사가 많이 나가서… 제가 고등학교 때 상태가 안 좋았던 것으로, 고등학교 때 본드를 하지 않았느냐, 이런 얘기까지 들었는데.(웃음) 그런 건 아니고. 저는 되게 곱게 자란 모범생입니다.  입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헛것을 본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는데…
한강에 검은 괴생물체가 다리 교각을 타고 올라가다가 물에 떨어지는 것을 고등학교 때 봤습니다. 집에서 봤죠. 아파트 창문에서. 한강이 보이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게 어떻게 보면 최초의 아이디어가 됐었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 저도 사실 어릴 적에 귀신을 본 적이 있어요. 옛날 큰 집 같은 곳이었는데 남들이 안 믿어줄 것 같아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만화로는 그렸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경험담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말해져서 TV프로그램에서 매년 그 집에 가곤 하더라구요.(웃음)

통역자 : (우라사와 작가님이) 18~19살 때 진짜 귀신을 봤대요.

봉준호 : 제가 한강에서 봤을 때와 똑같은 나이네요. 그 나이 때 힘든가봐요, 원래.(웃음)

봉준호 : 몇 살 때 만화를 처음 그렸는지 궁금합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테츠카 오사무 선생님의 그림을 그리고 직접 사인도 했었어요.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2학년 정도부터는 노트에 스토리를 스스로 만들어서 그렸었어요. 지금도 그건 간직하고 있지요.

통역자 : 감독님 몇 살 때 즈음에 영화감독이 되고자 했나요?

봉준호 : 중학교 3학년 때, 무슨 사건이 큰 게 있었던 건 아닌데 그 시점부터 뭔가 평생 이걸 해야겠다고 해서 자료 같은 것을 모았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영화감독이란 사람들은 다 어떤 과정을 밟아 감독이 됐을까 바이오그래피를 찾아보기도 하고. 중간에 영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을 해볼까 또는 감독이 아니라 촬영감독을 해볼까라는 갈등을 몇 번 한 적은 있었지만 크게 봐서는 딴 생각을 하거나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고 중 3때부터 지금까지 쭉 왔었던 것 같습니다.

봉준호 : 영화를 하고 감독을 하게 됐지만, 만화가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물론 그림을 잘 못 그리니까 포기했지만, 학생 때 대학가서도 계속 만화를 그렸습니다. 그런 미련이나 꿈이 약간은 남아있는데 그런 것을 영화 스토리보드를 그릴 때 해소하는 것 같아요. 영화 콘티나 스토리보드 그릴 때, 그게 만화하는 것과 비슷하거든요. 그래서 오늘 우라자와 선생님께 드리려고 선물을 가져온 것이 있습니다. <살인의 추억> 특별판 DVD인데, 제가 직접 그린 스토리보드도 있습니다. 우라사와 선생님같은 대가 앞에서 이런 것 보여드리려니까 되게 창피한데, 어쨌든 제가 직접 그린 드로잉이 있습니다. 영화도 한번 보시고.

우라사와 나오키 : 고맙습니다. 이야, 좋은걸요. 일본에서 만화가 하실 수 있겠는데요.(웃음)

봉준호 : 우라사와 선생님 만화는 상투적이지 않고,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한 캐릭터와 상황들을 통해서 선이 어떻게든 악이 맞서 싸울 수밖에 없고, 그런데 그 과정은 너무나 험난하고 힘들다는 느낌을 아주 현실감 있게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몬스터>나 <20세기 소년>에서 굉장히 감동적으로 와 닿는 부분 같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 사회에서 봤을 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항상 사회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것도 역시 시대 상황이나 배경에 따라서 규정되는 것이 아닌가 해요. 그런 면에서 ‘보편적 정의’를 찾기 위해 항상 생각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봉준호 : 사실은 7시간 정도 이야길 더 하고 싶은데 워낙 바쁘셔서 참도록 하겠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 저도 그렇습니다.

봉준호 : 그렇게 하면 20세기 소년 22권을 못 볼 것 같아서 빨리 일 하시게끔.. (웃음)

우라사와 나오키 : 끝나면 다시 이야기할까요?

♬대담 후기
봉준호 : <괴물>찍은 덕에 우라사와 선생님을 다 만나는구나 해서, 얘기하다보니 통하는 것이 많아서 의외로 기뻤습니다. <20세기 소년> 21권의 그림을 하나 그려서 저에게 사인을 해서 주셨기 때문에 거의 가보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 굉장히 닮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둘 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고. 그래서 한번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번 만나서 서로를 알아가야 되지 않을까…. 굉장히 닮았다고 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