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공포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진격의 거인에 부쳐 본문
진격의 거인 - 공포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한승태
때때로 "공포가 엄습하는 것은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떠돌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해할 때다. 어떤 규칙성도 합리적 이유도 없는 공포, 그 낌새가 여기저기서 선뜻선뜻 나타나지만, 결코 통째로 드러나지 않는 공포야말로 가장 무시무시하다. 공포란 곧 불확실이다. 위협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것에 대한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 그것에 맞서 싸우려 해도, 싸워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 글에 적합한 애니메이션이 한 편 있다. <진격의 거인>이다. 이시야마 하지메의 원작 만화를 아라키 테츠로가 최근 연출한 애니메이션이다. 애니플러스를 통해 한일 공동 상영된 이 작품은 한때 인기를 얻어, 방송과 인터넷 에 밑도 끝도 없이 진격의~~로 패러디되었다. 사람들에게 그저 공포로만 존재하는 거인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왜 인기를 얻었을까?
845년 중세가 배경인 이 작품에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100년 전부터 거인이 등장해 인간을 마구 잡아먹기 시작한다. 먹이사슬의 최종 소비자이던 인간에게 천적이 나타났다. 인류는 전멸하다시피 했으나, 폭압적 공포에 거대한 성벽을 쌓고 겨우 맞선다. 거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조사병단을 성 밖으로 내보내지만 매번 전멸하다시피 해서 돌아온다. 그러다보니 거인에 대한 정보는 극히 피상적이다.
죽음 앞에 선 인간의 공포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에는 어떠한 의도도 드러내지 않은 채 인간을 잡아먹는 무지막지한 거인, 왜 죽는지도, 잡아먹히는지도 모른 채 잡아 먹히기만 하는 인간들, 자신에게만 거인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나약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거인에 대항하는 인간 사회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이 애니메이션의 관람 포인트다. 거인을 막기 위한 인간들의 군대도 훈련 성적순으로 갈린다. 군대조차 우등생은 거인으로부터 멀어지는 헌병단으로 배치되고, 성적 나쁜 훈련생은 오히려 밖에 나가 거인과 대치해야 된다는 아이러니한 사회 시스템, 인간은 단순히 거인 앞에 소비적으로 그려지고 있어 자본주의 사회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모든 생물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나타났을 때 두 가지로 반응한다고 한다. 도망하느냐, 아니면 맞서 싸우느냐 중에서 선택한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여 2차적 공포가 발생한다. 사회와 문화적으로 순환되는 파생적 공포다. 이런 공포는 실제 위협이 출연했든 안 했든 인간의 행동을 제약한다. 즉, 경험자들의 인식을 왜곡하고, 인식에 따라 취하는 행동의 선택지를 바꿔버린다. 2차적 공포는 그런 위협과 직접 마주쳤던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침전물이다. 그런 침점물은 실제 위협받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경험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말하자면 불안의 감각, 취약함의 감각이랄까. 그런 불안과 취약함에 노출된 사람이라면, 실제 위협이 없을 때조차 위험에 직면한 때에나 보이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파생적 공포는 자가발전 하는 공포이다. 이런 사례는 상상 속에서 위험의 실체를 한껏 부풀리고, 압도되어 꼼짝도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은 이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애니메이션 속 거인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거인에게 먹혔다가 거인의 몸에서 나오게 된 ‘앨런’이나, 여성형 거인의 실체인 ‘애니’를 보면, 거인은 또 다른 인간의 자아로 보인다.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인간,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권력, 인간의 호기심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이 바로 거인의 실체라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전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원작가가 일본의 국군주의를 동경하고, 전범자를 존경한다는 발언으로 우리를 놀래켰다. 이런 공포물이가 가능한 사회는 정보가 통제되고, 언론이 통제된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식인 거인이 등장한 것 같다. 종북이라는 공포몰이로 사회가 마비된 듯 보인다. 거인은 빨갱이 같다. 거인은 북한 같다. 예전에는 선거 때만 출몰했는데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한다. 그런 거인을 우리는 누구나 내 안에 가지고 있지만, 서로 소통하며 괴물로 성장하는 상황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 거인은 당신이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제 목 : 진격의 거인
장 르 : 판타지/액션
제 작 : WIT STUDIO
연 출 : 아라키 테츠로 / 만화 원작자 : 이시야마 하지메
형 태 : 시리즈물 총 25화
제한상영가 : 19세 이상
제 작 국 : 일본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 > 애니메이션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표절기준 (0) | 2014.02.06 |
---|---|
<겨울왕국> (0) | 2014.01.10 |
2013년 12월 3일 오후 02:21 (0) | 2013.12.03 |
봉준호 & 우라사와 나오키 (0) | 2013.08.01 |
토토의 움직이는 숲 (0) | 2013.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