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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거미 / 김수영

바람분교장 2011. 9. 7. 18:11

거미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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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라는 것이 있는 사람은 초조하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초조하다. 한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 속이 새까맣게 탄다.  거미는 바람이 지나는 길목마다 거미줄을 쳐놓고 마냥 기다린다. 먹고살기 위해 기다린다. 그게 전략이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소식을, 누군가의 자비를,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때, 누군가만을 바라봐야 할 때, 존재가 사그라드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