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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과 데스카 오사무(手塚治虫) 본문
표절과 데스카 오사무(手塚治虫)
데스카 오사무의 대표작 <정글대제>. 우리에게는 <밀림의 왕자 레오>로 소개되었다. 데스카 오사무 팬 잡지 형태로 발간된 잡지 <철완아톰 클럽> 1966년 8월호.> 일본 최초의 TV용 칼라 애니메이션으로, 우리에게는 <밀림의 왕자 레오>로 잘 알려진 데스카 오사무(手塚治虫)의 <정글 대제>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송 작가로 일하던 1990년대 초반, 한 방송국의 애니메이션 관련 특집 프로그램 제작을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제작진이 일본 오사카 근교 타카라즈카(
인터뷰 대상은 데스카 오사무의 아들로 데스카 오사무가 설립한 무시프로덕션을 이끌고 있는 데즈카 마코토로 기억합니다.
1994년 개봉되어 세계적인 흥행 기록을 세운 디즈니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 “지금 디즈니에서 사자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고 있다… 삼촌인 흑사자에게 아버지를 잃고 왕위마저 빼앗긴 어린 사자 ‘심바’가 고난을 겪으며 성장, 결국은 권좌를 되찾고 밀림의 평화를 되찾는다는 내용인데, 그들은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당신 아버지 데스카 오사무의 <정글대제>와 너무나 흡사하다. 기본적인 줄거리, 사자와 정글이라는 소재, <정글대제>의 주인공 ‘레오’의 영어 이름이 ‘킴바’인 점 등 뭔가 여러 가지로…”
뭔가 주저주저하는 느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그런가?”
2007년 원형 그대로 복각 출간된 데스카 오사무의 만화 <디즈니 피노키오>. 1940년 발표한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피노키오(Pinocchio)>를 데스카 오사무가 극화로 새롭게 그려 1952년 출간했다. |
2007년 원형 그대로 복각 출간된 데스카 오사무의 만화 <밤비>. 1941년 발표한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밤비(Bambi)>를 데스카 오사무가 극화로 새롭게 그려 1951년 출간했다. |
질문하는 이가 당황할 만큼 이상한 반응이었지만 아직 확인하지 않은 내용이어서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 순간을 오래 전의 봉함엽서처럼 기억 속에 잠재웠었습니다. 이듬해인 1994년 디즈니의 <라이온 킹>이 개봉하고 세계적으로 흥행하자 데즈카 오사무의 유족들이 표절 시비를 들고 나왔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꽤 긴 시간이 흐른 지난 주말 오사카 출장길에 우연히 손에 넣은 복각판 만화책 세트가 그 오랜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주었습니다.
<우주소년 아톰>, 일본명 <철완아톰(鉄腕アトム)>의 만화가로도 잘 알려진 데스카 오사무는 그 외에도 <리본의 기사(사파이어 왕자)>, <블랙잭>, <붓다>, 등으로도 유명한데, 그는 오사카 의과대학을 마친 의학박사로 의사와 만화가 두 가지 길을 병행하려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한 어머니의 충고를 받아 들여 전업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데스카 오사무의 대표작 <리본의 기사>. 우리에게는 <사파이어 왕자>로 소개되었다. |
데스카오사무의 대표작 <철완아톰>. 1968년 발간된 단행본 <철완아톰-인공 태양편>의 표지 |
데스카 오사무의 <피노키오> 데스카 오사무 작화의 개성이 살아 있다. |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
1940년대 중후반, 길어야 4~5페이지에 그쳤던 일본 만화를 100페이지가 넘는 스토리 만화로 발전시켰다는 것과 캐릭터 특성을 만화에 잘 살렸다는 점, 직접 애니메이션 사업에 뛰어들어 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특징이 되어버린 리미티드 기법의 시도와 기초를 닦았다는 점 등으로 해서 ‘일본 만화의 신’으로까지 불리고 있습니다.
그런 ‘일본 만화의 신’이 스스로는 월트 디즈니를 ‘만화의 신’으로 부르고, 스스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큰 영향을 받았노라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심지어는 디즈니의 만화책을 그의 방식대로 베껴서 출판했던 것입니다.
밤비의 경우는 속지에 디즈니의 판권 표시가 되어 있긴 하지만 자신들 외에 어떠한 형태로도 캐릭터의 응용이나 만화 출판을 허락한 적이 없는 디즈니의 입장에서 볼 때는 분명히 ‘해적판 만화’가 될 그런 ‘짓’을 일본 만화의 신이 ‘저질렀던’ 것입니다.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밤비> |
데스카 오사무의 <월트 디즈니 밤비> |
데스카 오사무의 월트 디즈니 평전이라 할 수 있는 <월트 디즈니 이야기>의 데스카 오사무가 그린 미키마우스. |
<피노키오>만큼 확연한 차이는 나지 않지만 데스카 오사무 작화의 개성이 그대로 살아나 있다. 디즈니의 <밤비>에 관한 애정이 워낙 컸던 데스카 오사무의 느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뿐만 아닙니다. 이번에 복간된 데스카 오사무의 디즈니 시리즈 별책을 뒤져 보면, 데스카 오사무가 직접 쓴, 길지 않은 월트 디즈니 평전을 읽을 수도 있는데 거기에는 데스카 오사무 방식(?)의 독특한 미키마우스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내친 김에 조금 더 자료를 찾아 봤습니다. 자신의 자서전에서 <정글대제>의 큰 줄거리를 디즈니의 <밤비>에서 가지고 왔음을 털어놓기도 한 데스카 오사무. 그의 월트 디즈니에의 존경과 사랑은 그러한 ‘해적판’ 만화책 출간과 줄거리 인용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데스카 오사무의 대표작이자 현대 로봇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철완아톰> 역시 디즈니의 미키마우스와 피노키오에 큰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데스카 오사무는 자서전 <어머니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에서 아톰을 디자인할 때 손가락을, 미키마우스의 그것을 흉내 내어 4개로 그렸다는 것입니다. 이후 사람들의 항의와 질문이 빗발치자 5개로 수정하기도 했지만 이내 4개로 그리곤 했습니다.
1951년의 아톰(첫 번째)에서 1958년의 아톰(두 번째)까지는 아톰의 손가락이 4개지만, 1961년의 아톰(세 번째)에서는 보통 사람처럼 손가락이 5개로 그려진다. 이후, 1980년대(다섯 번째)에 이르기까지 아톰은 다시 4개의 손가락으로 그려진다.
정작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이 왜 4개로 그려졌는지를 몰랐던 데스카 오사무는 1965년 기자 자격으로 뉴욕박람회의 참관 차 미국을 방문했다가 그 자리에서 우연히 월트 디즈니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게 됩니다.
미키마우스는 귀엽게 그려진 캐릭터인데 손가락을 5개로 그리면 움직일 때 손가락이 잘 보이지 않거나 6개로 보일 때가 많다. 손가락을 4개로 그리면, 캐릭터를 귀엽게 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빠르게 움직일 때 손가락이 분명하게 보이고 5개로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데스카 오사무 '철완아톰'의 한 장면. 오차노미즈 박사가 아톰에게 새로운 기술을 이식한 후 코가 길어지면 안테나가 된다고 설명하는데 그 모습이 피노키오의 코처럼 보인다. 다음 장에서 아톰은 자꾸만 '괴물'처럼 변해가는 자신이 친구들과 멀어진다고 슬퍼한다.>
단지 손가락의 문제만 아니라 <철완아톰>은 <피노키오>의 소망도 흉내를 냅니다. 인조인간 아톰이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는 설정은 디즈니의 피노키오에서 나무 인형이 가졌던 꿈과 똑같습니다.
아톰의 안테나 코는 피노키오의 코를 닮았다 |
데스카 오사무의 캐릭터들 |
디즈니의 <밤비>가 너무 좋아 100번을 봤노라 자랑하던 일본 만화 신, 데스카 오사무.
데스카 오사무에게 원고 독촉을 하려면 <밤비>가 상영 중인 극장을 찾아가라 할 정도로 <밤비>의 열성적 팬이었던 그가 <밤비>의 숲속 친구들을 데리고 와 <정글대제>를 그렸고, 수십 년 후, 미국 제목이 <하얀 사자, 킴바 Kimba, the white lion>이기도 한 그의 정글대제>가 그가 그토록 존경해 마지않던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 모티브를 제공했습니다.
그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던,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던 '만화의 신'으로 불렸던 데스카 오사무와 그가 기꺼이 '만화의 신'으로 불렀던 월트 디즈니. 어떤 형태로든 그들은 그들의 세상을 완벽하게 이루어냈고, 훗날 모든 이들은 그 두 사람 모두를 '만화의 신'이나, 거인이라 거리낌 없이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 두 사람 간에 있었던 수십 년 전의 일을 끄집어내 '표절'이니 '오마주'니 구분하려는 게 아닙니다. 판권의 개념조차 희미했던 그 시절, 한 사람의 열정이 한 사람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며 우리 모두가 감탄해마지 않는 주옥같은 작품들로 다시 만들어져 쏟아졌고, 다시 그 아름다움이 오던 길을 돌아가 새로운 영혼으로 탄생한 또 다른 아름다움을 그저 혼자 되새겨보고 곱씹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글은 <철인 사천왕>이라는 애니메이션을 감독한 김혁이란 분의 블러그에서 빌려왔습니다. 편의상 조금 편집을 했으나 김혁 감독의 본의를 훼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그가 밝힌 근거에 의하면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제가 이글을 굳이 여기에 다시 올려보는 것은 우리나라 초창기 애니메이션의 표절시비 문제 때문입니다. 저작권의 강국 일본의 초창기도 사실은 이런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초창기 애니메이터들의 표절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문제는 그들이 평생 안고 가야하는 문제이지요.
그런 문제를 지금 꺼내어 더 이상 우리 애니메이션의 앞날을 어지럽히기보다는 애정으로 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그리고 애니메이터나 작가들 스스로 자신의 표절행위가 당대의 문제가 아닌 대대로 손가락질 받는 문제임을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독자나 관람자의 애정이 많으면 작가나 애니메이터들도 함부로 표절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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