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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장편 <홍길동> - 아버지를 찾는 모험 본문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

한국 최초 장편 <홍길동> - 아버지를 찾는 모험

바람분교장 2014. 8. 1. 12:06

 

서울 대한극장에서 개봉 당시 포스터  

지방 배급시 만든 포스터 


 

 아버지를 찾는 모험과 한국 최초의 장편 <홍길동>


                                              한승태(애니메이션박물관 수석학예연구사)

 

우리나라에 장편 애니메이션이 시작된 것은 1959년부터 CF를 제작하던 신동헌이 1966년 제작하여 1967년 1월 21일 개봉한 <홍길동>부터이다. 그의 <홍길동>은 우리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노력이었으며,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그간 <홍길동>은 필름을 찾을 수 없어 본 사람들의 추억 속에만 존재하여 왔다. 그러다 2007년 11월 일본 오사카의 필름아카이브에서 <홍길동> 필름을 찾고 한국영상자료원에 있던 사운드 네가를 가지고 복원하여 2008년 5월 시사회를 통해 공개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홍길동>에 모르는 분들이 많아, 이번 글에서는 한국 최초의 장편 <홍길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애니메이션 영화 <홍길동>에서 이조 중엽의 신분질서가 엄격한 조선사회를 보게 된다. 주인공 홍길동이 신분사회의 적서차별에 불만을 품기 때문에 스토리의 세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는 주요 갈등의 밑바탕을 이룬다. 또한 지방에서는 탐관오리(엄가진)가 죄 없는 백성들에게 고혈을 빨고, 도적떼들이 여기저기 출몰하여 관아를 습격하는 등 어지러운 난세가 스토리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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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떠나며 인사하는 홍길동 

곱단이 아버지를 구한 홍길동과 차돌바위 

신동헌 감독이 직접 작화한 홍길동 캐릭터 


 

영화는 고귀한 혈통(판서 집안) - 기이한 탄생(태몽) - 탁월한 능력(기골과 눈매, 탁월한 무술) - 버려지거나 집을 떠나서(가출) 죽을 고비를 넘김(자객의 침범) - 구출자 혹은 멘토(백운도사)를 만남 - 고난의 통과(백운도사의 시험) - 위기를 극복하고 승리(관군에 승리) - 위업의 성취(호부를 허락받음)와 같은 영웅의 모험 플롯을 따르고 있지만, 추구의 플롯이 겹침으로서 단순하지 않은 이야기 구조를 보여준다.

 

영화는 홍길동이 자기 집에서 떠나면서 시작한다. 홍길동은 여행에서 동반자 혹은 조력자인 차돌바위를 만나고, 동굴 속이나 용이 등장하는 산속 고난을 겪으면서 여행의 목적이 스승을 찾기 위한 모험과 탐색으로 바뀐다. 그래서 스승 백운도사가 걸인으로 변장하여 도둑질이나 하자는 유혹을 이겨내고, 동굴의 박쥐와 해골, 그리고 이무기를 통해 담력을 시험받고, 최종적으로 인내력 시험까지 통과하여 지혜를 얻고 한층 성숙해진다.

 

<홍길동>의 캐릭터들은 적서차별이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최골훈으로 대표되는 안타고니스트와 대결하며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재능과 성격을 드러낸다. 처음 홍길동은 유교적 사회 질서 속에서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회에서 출세를 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집으로부터, 즉 유교적 사회질서에서 내쳐졌지만 유교적 사회질서에서 인정받으려는 사람이다. 이는 차돌바위와 백운도사를 만나는 장면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사내란 모름지기 의로운 일을 해야 하며, 큰일을 위해 배우고자 한다. 이때 만해도 유교적 질서 속에서 막연하였던 큰일이 백운도사를 만나면서 구체적으로 바뀐다. 그는 개인의 욕심을 위해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되지만 백성을 위해서는 탐관오리를 징치하고 백성의 재물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바른 일을 함으로써 홍 씨 가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고자 한다.

 

주요 안타고니스트로서 병조판서 최골훈은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성취하려하는지 캐릭터의 성격 묘사(characterization)가 불분명하다. 적서차별과 탐욕적 권력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최골훈의 캐릭터는 매우 빈약하여, 마지막 홍길동과의 대결에서는 그다지 크게 긴장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제를 함축하거나 효과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편 영화의 공간은 영화 한 편의 영상 이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 <홍길동>의 공간은 매우 흥미롭게 전개된다. <홍길동>은 조선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공간적으로는 한양의 홍 판서 댁에서 시작하여 사또 엄가진의 고을과 산속 동굴, 험악한 산중과 백운도사의 거처를 거쳐 곱단네 집에 이어 다시 산중 활빈당의 본거지에서 엄가진의 고을과 최종 갈등이 해결되는 한양이 그 배경이다.

 

공간으로 보면 모험의 플롯이 그렇듯 떠났다 돌아오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공간의 높낮이에 따라 작품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잘 구현하고 있다. 산위로 상징되는 높은 곳은 배우는 장소이며, 선한 사람들이 도덕적 우월성을 확인하는 곳이고, 세속으로써 엄가진의 고을과 한양은 변혁되어야할 공간으로 그려진다. 특히 홍길동이 백운 도사로부터 무술을 배우는 장소는 스승의 시험을 통과하며 어렵게 올라야하는 기암적벽 위에 위치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양에서 최골훈과의 대결에서는 최골훈을 구름 위로 끌어올려 그를 떨어뜨림으로써 승리를 확인한다. 

 

사회제도에 의해 잃어버린 아버지 찾기라는 독특한 주제라는 점과 공간만큼은 상하의 축으로 구성되어 프라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의 선악의 대립을 잘 표현하였다. 이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장편은 외국의 작품을 흉내 낸 것이 아닌 우리의 정서를 담아냈다. 그래서 허균의 원작 소설 <홍길동>이 최초의 한글소설로 의미가 있다면, 애니메이션 영화 <홍길동>은 최초의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는데 1차적 의미가 있겠다. 또한 <홍길동>은 획기적인 흥행 실적과 더불어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기술과 인력이 없던 당시 한국에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완성한 작품으로 이후 애니메이터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