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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편 애니메이션의 시작 본문
3) 장편 애니메이션 출발 <홍길동>
우리에게 전설이 되었던 장편 홍길동이 2009년 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이는 영화 연구가 김준양 씨가 일본에 배급된 필름을 오사카 필름아카이브에서 확인하고 제보함에 따라 발굴되었다. 국내에서 그렇게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었던 전설을 우리는 일본에서 찾았다. 사실 예전에도 일본에서 보았다는 사람들의 제보가 있었으나 일본에 배급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제작사인 세기상사로서도 배급한 적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다행이 필름의 상태는 양호했으나 35mm가 아닌 16mm이었다. 일본어로 더빙된 필름이었으며, 제목은 <少年 忍子 吉童>으로 소개되었다. 의적이 갑자기 둔갑술을 쓴다는 이유로 ‘닌자’로 소개되었다.
자 그럼 <홍길동> 우리의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살펴보자.
<홍길동>을 제작한 신동헌 감독에 따르면 1965년 가을 세기상사로부터 만나자고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당시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픈 꿈을 꾸고 있던 신 감독은 앞뒤 재어볼 것도 없이 제작을 해보겠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당시 동생 신동우가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하고 있던 <풍운아 홍길동>을 각색하기로 하였다.
장편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애니메이터가 필요하다. 그래서 당시 신동우의 친구들과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을 끌어들였다. 김대중, 정욱, 배영랑, 김윤대, 유성웅 등이 그들이다. 이외에도 선화와 채화를 위한 여성 애니메이터들도 모집되었다. 다들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접하는 것이었다. 가르치며 제작한 20분 분량의 작품을 세기상사의 국쾌남 회장을 모시고 시사회가 있었다. 결과는 모두 버리고 다시 제작하라는 것이었다. 말이 20분이지 그 20분간의 필름을 만들기 위해 고생한 시간과 투자된 자본은 엄청난 것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동헌 감독도 짤막한 광고만 만들다 장편을 제작하였으니, 그 호흡이 제대로 나왔을 리가 없었다.
제작과정은 이렇다. 신 감독의 막내 동생 신동우가 먼저 스토리보드를 A4 반절 크기의 종이에 먼저 그렸다. 일부는 색감을 위해 채색까지 하였다. 그러면 사람들은 작자 맡은 부분의 스토리보드를 책상 앞에 압정으로 붙여놓고, 동작을 연구하고 연결하여, 신동헌 감독에 검사를 맡고, 합격을 해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곤 했다. 그러기를 1년을 꼬박 채웠다. 1966년 거의 일 년 동안 작업을 진행하고 막바지 작업을 1967년 1월 촬영을 마무리 하고 편집하여 극장의 상영을 기다렸다. 상영 전날까지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였다. 이들 스텝들의 노력은 관객들의 호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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