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cowgirlblues (cowgirl@artnstudy.com) |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했던 1933년대 말부터 1945년까지, 독일은 나치즘의 광기에 온통 휩싸여 있었다. 그들은 2차 대전을 일으켜 인종청소를 한다는 목적하에 유대인 대량학살과 고문 등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했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어떻게 한 나라의 전 국민이 그토록 잔인한 언설에 세뇌될 수 있는지, 또한 단결하여 광폭한 폭력을 직접 휘두를 수 있었는지 말이다. 칸트, 헤겔, 니체, 하이데거 등 전통적으로 철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인들의 합리적인 사고는 어디로 간 것일까? 자국의 반유대정책에 저항하던 정의로운 독일인은 진정 없었던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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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30년대 독일의 상황을 살펴보면 나치 정권이 왜 들어섰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패전했던 독일은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여 배상 문제를 결정지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주요 장기를 모두 빼앗긴 채 토막당한 시체와 다름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막대한 배상금을 갚고자 화폐를 마구 발행하여 화폐 가치가 급락했고, 이는 매일 두 배씩 뛰는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감자 한 개 가격이 수십억 마르크에 이르렀다. 영토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고, 산업이 마비된 전후 독일에서 물과 전기는 부족했으며 장기 실업률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지폐는 땅에 떨어져 있어도 줍지 않을 종잇조각에 불과했기에, 사람들은 약간의 음식을 구하고자 집안 집기들을 남김없이 내놓았다.
게다가 또다시 전쟁을 일으킬 민족이라 하여 무장 군비를 제대로 못 갖추게 했기에 대다수 독일인은 야만적인 세상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이러한 가혹한 배상요구는 나치당 집권의 실질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베르사이유 조약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던 굶주린 독일인들은 생활 안정과 군비 확장으로 강한 독일 재건을 강령으로 내세운 히틀러에 열광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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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장미단 백장미[Die Weisse Rose] (우리나라 번역서 제목 :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라는 책이 1952년 잉게 숄이라는 여성에 의해 집필되어, 독일 자국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는 그녀의 두 동생 한스와 소피 숄 남매에 관한 실화를 다루고 있다. 진보적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민주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성장한 한스와 소피는 각각 뮌헨 대학에서 의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마음 맞는 친구들 및 지도교수와 함께 나치 정권의 추악함을 폭로하고 투쟁을 촉구하는 ‘백장미단’을 조직하여 비폭력 운동을 전개하는 도중, 뮌헨 대학 교내에 뿌린 전단이 나치당원이었던 학교 수위에게 적발되어 게슈타포로부터 체포당한다. 심문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준 당당함과 의연함은 존경스러울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나치는 정권에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본보기를 보여주고자 했고, 형식상의 재판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어 끝내 사형이 내려졌다. 그리고 선고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소피를 시작으로 참수를 당하고 만다.
브레히트 [1898~1956] 배우가 연극 도중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등 의도적으로 몰입을 깨트리는 ‘낯설게 하기’를 제안했던 연극계의 풍운아, 브레히트는 순수 게르만 혈통이었지만 의무병으로 참가했던 1차 대전 때 전쟁의 참상을 뼈저리게 느껴 이후 나치즘을 맹렬히 비난했던 사람이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자 해외로 망명했던 그는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 ‘제 2차 세계대전 중의 슈베이크’, ‘코카서스의 백묵원’, ‘파리 코뮌의 나날’’ 등의 작품을 통해 반파시즘과 사회 개혁의지를 강하게 피력하였다. 그의 ‘낯설게 하기’ 기법은 일상적인 것, 친숙한 것들을 어색하게 만들어, 놓치고 있는 과오를 되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을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레마르크 [1898~1970] 1차 대전 참전 경험이 반나치주의자가 되도록 이끈 또 한 명의 독일인이 있다. 전쟁의 체험을 토대로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발표하여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기자출신 소설가 레마르크를 보자. 전쟁을 구상 중이던 나치스는 반전적 정서가 가득한 그의 책을 판금 분서 시켰고, 그는 압박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한 후 미국국적을 취득하였다. 이어 다시 한번 국가주의의 망령을 비판하는 책을 발간했으니, 바로 또 다른 대표작 ‘개선문’이다. 나치에 의해 부인을 잃고 수용소를 탈출한 라비크는, 파리에서 실력 없는 의사들을 대신해 직접 수술을 하는 무면허 의사로 살아간다. 아니, 산다기보다는 어깨 위에 올려진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단지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다. 조앙이라는 낯선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마저 동거남에 의해 살해당하는 암울한 현실 속에는 전쟁이 남긴 상흔과 단절, 그리고 현대인이 느끼는 좌절감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편 전설적인 명감독 파스빈더는 60년대를 거치며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 기적을 일구었지만, 여전히 나치즘적 요소를 안고 있는 독일 사회를 비판했던 인물이다. 뉴저먼 시네마를 세계적으로 부흥시킨 가장 급진적이고 중요한 인물이었던 그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영화를 통해 겉으로는 두 세계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패전국으로서의 과오를 뉘우치는 듯 보여도, 그 이면에는 인종차별과 계층 간 위계질서가 만연한 경직된 70년대 독일의 모습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60대 청소부 에미와 아들 뻘 되는 아랍 출신 노동자 알리는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다 사랑하는 연인이 되지만, 곧 주변 사람들의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시선과 마주한다. 만약 살갑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들의 실리를 채우려는 잇속에 불과했다. 어느새 에미마저 아랍인을 천대하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알리를 하대한다. 두 사람은 마지막에 사랑을 재확인하지만, 이는 확실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우리는 ‘편견이란 자기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목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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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대항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특히 다수를 따르는 것이 대중심리이기에, 모두가 YES라고 말할 때 혼자 NO라 말하기는 어렵다. 만약 ‘백장미 수기’가 레지스탕스를 다룬 글 중에서도 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면 이유는 다음에 있지 않을까?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 돌격대인 히틀러-유겐트[Hitler-Jugend]에 가입되어 청년 나치 당원으로 키워지던 당시 독일에서도, 정부가 잘못되었음을 목숨 바쳐 주장했던 정의로운 젊은이들, 일반 시민이 분명 존재했었다는 사실 말이다. 이 한 가지 사실이 인간 내면의 파시즘적 속성에 섬뜩함을 느끼던 우리에게 일종의 위안을 준다. 당신은 국가가 나서서 악행을 강요할 때,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불편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었는가? ‘낯설게 하기’를 가동시켜 당연한 듯 여겨왔던 주위를 한번 돌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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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똑 같은 질문을 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우리 사회는 건강한가? 나는 정말 건강한가? 나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가? 여러모로 불편한 글이다. 이런 양심이 불편한 하루 하루이다. 생활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것에 바쁘다보면 우리 사회가 어디로 달려가던 신경쓰지 않는다. 브레히트의 방법론이 그래서 유효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작가들은 호시절을 맞고 있는 것이다. 이 사회는 우리가 불편해 한다는 상황을 아프다는 것을 쓸 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작가들이여 분발하라. 그대들의 낯설게 하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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