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공화국 / 송승언 본문
공화국
눈이 내리고 쌓이면 겨울이 왔다
겨울이면 우리 모두 집을 비우고
공회당에 가서 함께 지냈다
꺼지지 않는 불을 피워 두고서
끝없이 옛날이야기가 이어졌다 옛날은 끝도 없었다
어른들은 모두 의견이 있었다
의견이 모이면
우리들은 눈 뭉치러 갔다
태양 아래서 빛이 빠져나가고
어른들은 창을 들고 사냥하러 갔고
지난해 잡았던 물개를 또 잡아 왔다
공회당의 불가에 앉아 우리는
옛날이야기를 듣다 돌다가, 곧 깨어나
사냥하러 가거나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눈이 목지 않은 채 여름이 왔다
쌓인 눈에 눈멀 것 같았다
죽는 사람은 빈집에 죽으러 갔고
죽고 나서도 눈멀고 싶은 사람들이
물개가 되어 창에 찔린 채 돌아오기도 했다.
송승언 시집 <철과 오크> 중에서 pp52~53
시를 읽으면 언젠가 읽었던 신화가 기억난다. 그 신화는 동굴 속의 곰이 인간들이 사냥을 나오면 자발적으로 그들에게 사냥당하고 죽으면 다시 동굴로 돌아온다는 순환론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신화 속의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일 뿐이다. 시는 전반적으로 공동체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물신화된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꿈꿀 수 없는 이야기다. 우리는 온전치 못한 부속품을 만들고 쓰레기를 만든다. 공화국의 온전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면서(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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