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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 김언희 본문
선물
김언희
선물을 받는다
장갑이네
보랏빛 가죽 장갑
세상에서 가장 보드라운 가족, 물개 좆으로 만든다는 생로랑
장갑 속을 들여다본다
이것은屍姦같다이것은獸姦같다이것은劫姦같다
뒵혀질로둔갑한이것은모종의협잡같다
손가락을찔러넣어서라도
세워라, 나를!
촉촉한 물개 가죽은 살에 착 감기고 장갑은 손가락들을
흠신 빨아들인다 입처럼
항문처럼
죽은 물개의 입에
손가락을 찔러 넣은 채 살게 될 거다
너는,
죽은 물개의 항문에
손가락을 찔러 넣은 채 살게 될 거다
다시 죽을 수 없게 된 물개 열 마리가 열 손가락을 쪽쪽
빨아댈 거다 너는
쭉쭉 빨리 거다 골수가 녹아내리고 창자가 녹아내리고 뼈마디가
녹아내릴 거다 너는 이 장갑을 영영
벗을 수 없을 거다
구멍 속의 손가락들은 이미 구멍의 것
이미 질척거리고
산 채 벗겨져 더 질 좋은 생가죽 장갑이
말씬말씬 꺾어본다
열 손가락
마디마디를
2019년 7월호 현대문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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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선물일까? 문명의 선물인가!
이 선물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대 삶의 낙인과 같다.
상품의 섹슈어리티는 그렇게 신선한 건 아니지만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를 그리는데 효과적이다. 온몸을 감싼 자본의 구속복을 우리는 스스로 벗을 수가 없다. 그게 지금의 우리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