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문학과 예술이 어떻게 올림픽과 연계될까? 본문
문학과 예술이 어떻게 올림픽과 연계될까?
한승태(학예연구사)
문학과 예술이 어떻게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이벤트와 연계될까? 저도 처음 이런 주제로 토론을 제의받고 한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분들도 그런 생각을 처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에 대해 허준구 박사님께서 준비한 발제를 통해서 올림픽이 오로지 스포츠만을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사실 저는 고대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 축제를 통한 시와 연극이 경연을 통해 발전되어 왔다는 것만 생각하였지, 이것이 올림픽이라는 스포츠와 연결될 수 있다는 걸, 발제문을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우선 발제자는 다음과 같이 올림픽과 예술을 연결하였습니다.
“올림픽정신은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문구에 담겨 있어 보인다. 그러면 문학은 무엇인가. 문학은 언어를 예술적 표현 제재로 삼아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여 인간과 사회를 진실되게 묘사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정신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실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은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탐구가 이루어지는 반면, 올림픽은 인간 육체를 통해 그 정신이 구현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문학이나 올림픽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를 통해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나가는 진실성에 그 공통분모를 지닌다고 하겠다.”
문학과 예술의 제의적 기원설은 문학과 예술의 기원을 고대의 종교적인 제의에서 찾고 있습니다. 올림픽도 저는 비슷한 기원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부터 문학과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육체를 단련하는 올림픽과 연결되는지 검토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리스의 ‘아레떼ARETE(미덕)’라는 개념으로 수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대 종교적 제의에서는 시와 춤과 노래가 한데 어우러진 원시적인 가무가 행해졌는데, 그 원시적인 가무(Ballad Dance)에서 문학과 예술이 발생했다는 것이 현재까지 주요 기원으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발라드 댄스는 원래 분화되지 않은 원시종합예술 형태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원시적인 가무 속에 들어 있던 언어는 문학으로 소리는 음악으로 몸짓은 무용과 연극으로 분화되었다는 것이지요. 아마도 올림픽도 이렇게 출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발라드 댄스는 디오니소스축제를 통해서 성황을 이루었고, 발전하여왔습니다. 올림픽이 제우스에게 잘 보이려한 제의에서 출발하였듯이, 디오니소스 축제는 말 그대로 포도주의 신이며 곡물신인 디오니소스에게 드리는 제의였습니다.
디오니소스는 원래 신이 아니었습니다. 디오니소스는 모든 신의 아버지인 제우스와 테베의 왕녀 세멜레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세멜레를 질투한 헤라의 농간으로, 세멜레는 제우스가 떨어뜨린 번개에 맞아 죽고, 제우스는 아기를 자신의 허벅다리 속에서 넣어 남은 달을 채운 뒤에 세상에 태어나게 합니다. 출생 후 그는 뉘사 산의 동굴에서 요정이 가져다주는 소젖을 먹고 자라게 됩니다. 그러다가 거인들에게 사로잡혀 온 몸이 찢기는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제우스의 어머니인 레아의 도움으로 그는 찢긴 몸을 회복하고 다시 부활합니다. 부활한 디오니소스는 신으로 인정받아, 올림포스 산에 사는 열두 신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신화를 보면 알 수 있듯, 디오니소스 신은 온몸이 찢긴 채 살해되어, 이듬해 공동체의 먹거리로 부활하는 곡물신의 계보에 속하는 신입니다. 디오니소스에게는 디튜람보스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훗날 디튜람보스는 디오니소스신 뿐만 아니라, 그에게 바치는 찬가를 일컫는 말이 됩니다.
디튜람보스는 두 개의 문을 거친 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두 번 자궁 문을 열고 나온 자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은 처음에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오고, 나중에는 아버지의 허벅지(자궁)에서 나온 디오니소스를 가리킵니다.
하여튼 이 축제는 농업의 생산성 제고를 기원하고 감사하며,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에 대한 축복을 기원하는 행사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축제가 그리스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사에 삼한시대 제천 의식인 영고와 동맹과 무천이 벼의 파종(5월)과 추수(10월)와 관련이 있듯이, 디오니소스 축제는 밀의 파종과 수확과 관계가 있습니다.(그리스 같은 지중해성 기후에서는 주로 겨울 밀을 키우는데, 겨울 밀은 11~12월 사이에 파종해 3~4월 사이에 추수합니다.) 다시 말해, 디오니소스 축제는 농작물의 풍작과 다산을 기원하기 위해 곡물신인 디오니소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제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합창과 연극 경연대회가 벌어졌던 디오니소스 축제는 파종과 추수시기에 농촌과 도시에서 두 번 행해졌습니다. 축제는 남근 모양의 조각상을 든 여자들의 행렬로 시작됩니다. 이 남근상을 든 여자들 뒤로 바구니를 든 어린 소녀들과 길고 커다란 빵을 든 사람 그리고 다른 봉헌물을 든 사람과 물 단지를 든 사람과 포도주 단지를 든 사람들이 잇따릅니다. 이런 행렬이 끝난 후에는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합창과 연극 경연대회가 국가적인 행사로 벌어졌습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는 자국민의 단결과 다른 국가와 친선을 다지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행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를 주관하는 것은 최고 집행관인 아르콘(Arcon)이었습니다. 도시 축제에는 디오니소스 상을 든 사제들 뒤로 아테네 시민들과 아테네에 거주하는 외국인, 그리고 아테네의 식민도시에서 온 대표들이 뒤따랐습니다. 아테네가 최전성기를 맞이한 5세기 중엽에는 아테네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무기들과 각국에서 보내온 축하 선물들이 이 행렬 대열에 참여했습니다.
이 행렬은 다른 신들의 사원을 돌아다닌 후, 디오니소스 극장 앞으로 갑니다. 행렬이 제단 앞에 도착하면, 디오니소스신의 가면을 쓴 제사장이 황소를 희생 제물로 바칩니다. 희생 제의가 끝난 후에는 디튜람보스 합창 경연 대회가 열렸습니다. 디튜람보스를 부르는 합창단(코러스)을 후원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이 디튜람보스 합창 경연대회는 매우 경쟁적이었다고 합니다.
축제의 두 번째 날부터는 비극, 희극, 사튀로스극의 경연대회가 벌어집니다. 이 연극 경연대회의 심사위원들은 제비를 통해 뽑았습니다. 두 번째 날에는 5편의 희극이 공연되었고 셋째날, 네쨋날, 다섯째날에는 매일 비극 3편과 사튀로스극 1편이 공연되었습니다. 사튀로스는 디오니소스를 따라다니는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양인 반인반수를 말합니다. 사튀로스극은 이러한 사튀로스를 흉내 내는 짧고 우스꽝스러운 연극을 말합니다. (비극경연대회에서 아이스킬로스는 13번 정도 우승했고 소포클레스는 24번 우승했고 에우리피데스는 5번 우승했다고 합니다.)
왜, 아테네 사람들은 해마다 합창과 연극 경연대회를 열어, 디오니소스의 삶과 죽음을 모방하고 싶어 했을까요? 죽음과 삶이라는 것이 인간에게는 표현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본능적인 충동이었기 때문일까요? 더불어 아테네 시민의 단결이라는 사회적인 목적 때문일까요? 단순히 디오니소스 신에 대한 제의였을까요?
디오니소스 축제 기간 동안 공연되었던 비극이 다루고 있는 것은 생로병사의 주기입니다. 봄에 싹이 텄다가 겨울에 이우는 한해살이 식물처럼 인간들도 그 상승과 몰락의 주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피할 수 없는 주기를 우리는 흔히 운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러한 불가항력적인 몰락과 소멸에 저항합니다. 사실 고대 그리스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큰 죄는 신의 뜻, 다시 말해 운명을 거스르는 오만함(Habris)이었습니다. (예, 오이디푸스 왕 _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운명과의 싸움을 벌이는 인간의 의지와 미덕을 다루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미덕(arete)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자질을 뜻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탁월한 장점을 이용해 운명에 굴종하지 않고 삶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의지는 신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용서할 수 없는 죄지만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미덕(arete)입니다.
디오니소스 축제 때, 사람들은 비극을 보면서 인간의 미덕으로도 어쩔 수 없는 저 커다란 운명의 힘에 순종할 것을 배웁니다. 헤라클레스는 보편적인 영웅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헤라클레스가 자기 죄를 씻기 위해서 했던 12가지 노역은 인간의 보편적인 투쟁을 보여줍니다. 헤라클레스가 싸웠던 것은 바로 죽음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의 미덕을 통해 헤라클레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노역을 모두 해결하고 나중에는 불멸성을 얻어 신의 반열에 들어갑니다.
발제자의 자료에 의하면 디오니소스 축제와 올림픽의 기원은 비슷하게 출발하여 두 개의 행사가 결합하는 형태로 가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고대올림픽에서는 승패를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 연마한 기량과 단련한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선수들이 정정당당하게 겨루어 제우스신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
고대올림픽 정신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최고 기량과 능력(아레떼)을 발휘하여 신을 기쁘게 하며 동시에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인간탐구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올림픽과 문학과 예술의 그 기원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면 올림픽 속에서 문학과 예술을 구현하는 문제에 대해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발제자의 의견대로 근대 올림픽에는 문학과 예술도 같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5회 스톡홀름대회인 1912년부터 비공식 경기 종목으로 예술이 포함되었다. 그 예술 경기 종목은 건축을 비롯하여 음악, 회화, 조각, 문학 등 5개였으며, 이 예술경기 종목은 육체와 정신을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는 고대올림픽 정신을 살려야한다는 쿠베르탱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채택되었다. 쿠베르탱은 올림픽 경기가 지니는 의미를 ‘육체의 즐거움’, ‘아름다운 교양’, ‘가정과 사회에 대한 봉사’라고 주장하였으며, 이후 고대 올림픽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 때에 예술경기 종목이 대폭 확대되었다. 특히 문학 경기종목은 극시와 서사시 서정시로 세분화 되었다. 그러나 이런 예술 경기종목은 1948년 런던대회를 기점으로 첨예하게 국가주의가 개입되어 퇴색되었고, 1954년 로마IOC 회의 결정으로 영구히 사라지고 말았다.”
비공식 종목이지만 대회의 경기 규칙은 어떻게 적용하였는가? 누가 어떻게 심사하였는가? 이런 의문이 남습니다. 과연 서정시를 서사시를 어떻게 수치화 하여 점수를 매겼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사례로 제시한 2012년 제 30회 런던 올림픽에서 ‘문화올림피아드(Cultural Olympiad)’를 전면에 내세워 문학과 예술을 다시 시도하였는데, 그 내용을 보면 문학이라기 보다 문학을 바탕으로한 퍼포먼스에 가깝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일단 문학이 공동 창작이 아닌 개인의 창작이며, 고민의 시간과 사고의 과정을 통해 나온다는 것을 전제할 때, 경쟁하듯이 모여서 기량을 뽐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심사의 어려움과 언어의 문제도 있었겠지요. 그래서 바벨탑과 같은 기념물을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고대에도 그렇듯이 문학을 종합예술로 표현된 합창과 비희극처럼 공연예술의 형태로 드러났다는 걸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경우에도 고대 올림픽에서 선수들처럼 육체의 단련만이 아닌 정신의 고양을 위한 대회가 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학과 예술이 올림픽의 선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관객을 위한 것인지, 즉 올림픽의 주체가 누구인지도 고려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올림픽의 목적이 고대와 현재가 다르기 때문이겠지만 말입니다.
다만 런던의 사례가 놀라운 것은 원시종합예술에서 오늘날 문학과 예술이 분화되어 나왔다면, 지금은 분화된 문학과 예술이 미디어 매체와 네트워크를 통해 통합의 형태로 발전할지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다는것입니다.
발제자도 지적하였듯이 현재의 올림픽은 상업자본과 엘리트 체육이 결합되어 상업주의와 국가의 정치적 목적 내지는 수단으로 선수들이 동원되고 정치적 영향력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대 올림픽의 목적과 달리 인간 육체을 극단까지 경험하는 경쟁으로 치닫고, 국가주의와 자본의 대리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앞으로 올림픽에 문학과 예술이 들어간다면 현재 올림픽의 형태에 경종을 울리거나, 육체 단련과 정신의 고양이라는 균형을 맞추는 문학과 예술의 결합을 상상해 봅니다. 그것도 상상이라는 말에 방점을 찍으면서 말이죠.
앞으로 자본으로부터의 해방, 인류 평화를 위한 전진이라는 과제를 올림픽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미흡한 이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