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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에 대하여

바람분교장 2015. 6. 24. 10:32

신경숙의 지난 17일 입장 표명은 이랬다.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 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신경숙, 2015년 6월17일)
어제의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문장과 내 소설 ‘전설’의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이상이 신경숙이 발표한 자신의 표절에 대한 입장이다.
“문장을 여러 차례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을 보면서 나도, 비슷한 경험이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예전에 이시영의 ‘달밤’이란 아주 짧은 시를 읽을 적이 있고, 군대를 갔다 와서 시를 다시 쓰면서, 나도 모르게 ‘거적데기 같은 달빛’이란 표현을 내 시에 썼던 적이 있다. 물론 내가 발견한 건 아니었다. 나의 스승이 발견하고 비슷해 보인다고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타인의 시를 외운데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이후 좋은 시를 보아도 읽기만 하지 외우지는 않았다. 그렇다하더라도 좋은 시 구절은, 벼락같은 표현은 부지불식간에 내게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타인의 작품을 읽지 않을 수는 없다. 내 스스로 엄중하게 돌아봐야 할 따름이다. 어떤 때는 그 표현 하나 때문에 작품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어제 신경숙의 해명은 우스워 보인다. 아니 독자를 기만하는 것처럼 보인다.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다. 아무리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몫이라고는 하나, 같은 작품의 표절의 문제가 이번 처음 제기된 것도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 최종 종결하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좀 더 진솔하게 대답했다면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가슴에 상처가 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 될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문단의 말석에 이름도 보이지 않으니, 기껏 스승이 지적했겠지만, 그녀는 공인으로 많은 독자와 좋은 출판사와 우호적인 평론가를 거느린 영향력 있는 작가이기에 자신에게 더 엄정해야 했었다. 그녀의 작품 하나 하나가 한국문학의 자산으로 치부되어 왔기 때문이다.
어제 나는 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쳐 오신 스승(앞의 스승과는 다른 분이다.)의 정년퇴임 자리에 갔다 왔다. 이번 신경숙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인 얘기는 아니었지만,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원론적인 이야기와 그렇다면 나도 신경숙의 작품을 표절하여 써 보겠다는 치기어린 말도 나왔다.
물론 신경숙도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신 작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작가인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바야르는 추리비평의 개념을 만들어 낸 학자이기도 한데, 과거의 작가가 미래에 발표될 후배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예상표절”을 소개한 바 있다. 구미 당기지 않는가? <예상표절>이란 책이 우리나라에도 이미 번역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고, 차라리 이걸로 대응하시는 게 어떻겠는가? 미시마 유키오가 당신 작품을 베낀 거라고, 한때 이인화가 혼성모방이란 말로 자신의 표절 의혹을 비껴갔듯이 말이다. 뭔가 그럴듯한 개념 하나 던져주고, 입을 다물라. 그러면 나머지는 평론가들이 알아서 나서주지 않겠는가?
이런 나도 난감하다.
정념퇴임의 자리를 파하고 돌아와 보니 나의 아내는 또 상상의 나래를 펴고, 여자 후배와 SNS로 주고받은 메시를 근거로, 그걸 지운 근거로 나의 외도를 의심하는 지경이니, 밖은 고사하고 내 내부는 불구덩이다. 아, 인간이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