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2014년 12월 8일 오후 07:28 본문
수레바퀴를 깎으며
한승태(시인)
장자(莊子), 「外篇」, 천도(天道)편에 보면 제나라의 환공(桓公)이 책을 읽고 있는데, 윤편(輪扁)이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환공이 읽는 건 무슨 말을 쓴 책이냐고 묻는다. 환공이 성인의 말씀이라고 대답하자 윤편은 또 성인이 살아 계시냐고 묻는다. 환공이 다시 성인은 벌써 돌아가셨다고 답하자, 윤편은 환공이 읽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라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환공이 이치(理致)에 닿는 설명을 하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러자 윤편은 바퀴를 더 깎지도 덜 깎지도 않는다는 일은 손짐작으로 터득하여 마음으로 수긍(首肯)할 뿐이지 입으로 말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그런 의미에서 옛사람도 그 전해 줄 수 없는 것과 함께 죽어 버렸기 때문에 성인의 말씀이더라도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수레바퀴를 깎는 것은 문학에서 창작에 비유할 수 있겠다. 세상에는 수많은 창작교실이 있다. 하지만 누구나 창작자로 성공하지는 않는다. 이 비유는 창작도 느낌의 체계라는 것을 말한다. 문학은 글로서 그 느낌의 체계를 전하려 한다. 그러나 독자 또한 느낌의 체계를 가진 사람이다. 각자의 느낌의 체계에서 그 감각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같은 창작수업을 들어도 창작을 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의도와 독자수용의 문제가 있다. 독자는 문학을 즐기는데 있어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작가의 의도대로만 읽어야 하는가? 여기에는 독자수용이론이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대략 독자는 독자 나름대로 독법이 있고 그것이 강제되지 않으며 강제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에 자신의 독특한 상상을 전하려 하지만 독자는 반드시 그것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읽을 수도 있고 저렇게 읽을 수도 있다. 이것은 그 동안 작가에게 억눌려왔던 독자의 자유로운 상상에 문을 열어 놓았다
신춘문예의 계절이 돌아왔다. 이제 각자의 바퀴를 깎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