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세상 끝의 봄 , 김병호 본문
세상 끝의 봄
김병호
수도원 뒤뜰에서
견습 수녀가 비질을 한다
목련나무 한 그루
툭, 툭, 시시한 농담을 던진다
꽃잎은 금세 멍이 들고
수녀는 떨어진 얼굴을 지운다
샛길 하나 없이
봄이 진다
이편에서 살아보기도 전에
늙어버린, 꽃이 다 그늘인 시절
밤새 혼자 싼 보따리처럼
깡마른 가지에 목련이 얹혀 있다
여직 기다리는 게 있느냐고
물어오는 햇살
담장 밖의 희미한 기척들이
물큰물큰 돋는, 세상 끝의 오후
----------------------------
참 짠하다.
한때 너는 등불을 들고 왔으나
이제 너는 세상의 모든 상처와 근심을 안고 떨어지는 자비구나
견습생, 그것도 수녀라니
이편에서 살아보기도 전에
늙어버린, 오호라
꽃이 다 그늘인 시절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