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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평전 / 허경진 본문
1. 허균은 시인인가? 소설가인가? 선비인가? 혁명가인가?
--유교반도 / 소설가로보다 당대의 최고 시인이며 평론가며 편집자로 다양한 면모 하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의 저자로만 알려져 왔다.
허균이 역적으로 죽고 나자 그의 모든 글까지도 죽어야 했다.
소설가 : 홍길동전 : 조선의 신분제도의 불평등과 사회체제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꾼 소설로는 이 한 권
손곡산인전 --> 홍길동에 영향
남궁선생전 : 아전인 남궁두가 유교사회와 대립하게 된 내력과 도교방술
장생전 : 밀양도호부 좌수의 아들이었으나 첩의 고자질로 쫒겨난 비렁뱅이로 전락한 인물이지만 의협심 강하고 남다른 인품과 능력으로 많은 비렁뱅이가 그를 따랐다.
엄처사전 : 몰락한 양반
장산인전 : 대대로 한의사
시인 : - 학산초담 : 당대 선조대 시인들에 대한 시평 / 스승 이달 변호
- 교산억기시
- 국조시산 : 정도전부터 권필까지 조선시인들의 시를 가려 뽑아 888편을 분류하고 批(작품의 미감이나 배경 전체를 봄)와 評(어느 한 구절의 미감을 논함)을 붙임
- 성수시화 : 최치원부터 허균까지 800여년의 시인들의 작품 정리 및 품평(전라도 함열 귀양)
- 성옹지소록 : 참고문헌 없이 평론
- 북리집/섬궁뇌창록/감호집 : 전쟁 전의 습작시 --> 모두 유실
- 성소부부고 : 허균의 문집으로(장독이나 덮을 정도의 하잖은 글) 자신이 생전에 편집 ==> 여기에는 詩, 賦, 辭, 序,記,傳,書,論,說,辯,解,雜文,題跋, 讀,箴,銘,頌, 贊,뇌,애사,제문,행장,비문,신도비문,갈,묘표,묘지,기행,잡기,척독,설부 등 다양한 독서편력 등 64권여권의 방대함 - 귀양덕분에 만들어짐(외손자 보관)
- 한정록 : 은일/한적/퇴휴/청사 ==> 자연으로 돌아가겠다
혁명가 : - 귀양 전과 귀양 이후 그는 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자신이 세상에 맞지 않자 자신을 세상에 맞춘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했다.
- 서얼 차별 철폐 주장과 민중봉기 경고하다 스스로 홍길동이 되어 혁명을 준비하다 실패 / 함께 처형당한 동지들(서양갑/심우영/박응서/이경준/박치인/박치의/허홍인)이 대부분 민중들이었다. 이들은 소양강가에 집을 짓고 같이 살면서 무륜당이라 하고 시를 짓고 어울려 강변칠우라 했다.
- 동지들을 과거에 급제시키고 이들과 도모하여함
-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 동지들을 규합하고 광해군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폐비론을 내세웠으며, 한편으론 사회구조에 불만을 느낀 서얼들을 후원했다.
- 유재론 : 하늘이 재능 있는 사람을 내었는데 사람이 이를 가문과 과거로 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 호민론 : 천하에 두려워 할 것은 백성뿐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엿보다가 때를 만나면
- 관론 :
12편의 논과 3편의 설 남김
2. 허씨 5문장가와 교산 허균
- 허균은 아버지 허엽이 젊은 사림이 추대한 동인의 영수였기에 정권의 중심에 들어갈 수 있는 기득권자 / 국제정세를 파악한 보기드문 정치인
- 젊은 시절 자유분방하게 살았기에 세상이 버렸지만 그도 나름대로 세상을 바꿔볼려고 노력했다.
- 당대 허균에 대한 평 : 문장이 뛰어나나 경망하다. 상중에도 기생과 놀고, 부처를 믿었고 등 유교적 테두리를 벗어났다.
아버지 ==> 초당 허엽 ; 동인의 영수 / 화담과 퇴계의 제자 / 두 번 결혼(김광철의 딸)
1) 악록 허성 : 이조판서 등 정치적 영향력 / 일본 서장관 - 일본 침략 주장
2) 하곡 허봉 : 경기도 순무어사로 병조판서 율곡을 탄핵하다 선조의 미움을 받아 평생 떠돌이(경기도 춘천)로 삶 / 일곱살에 작시 / 18세에 장원 / 중국 서장관 연행일기 <하곡조천기> 24세 홍문관 응교 / 18세 아래의 허균에게 시의 세게를 가르친 최초의 스승 / 38세 요절
3) 나설헌 허초희 : 자는 경번, 당당히 이름을 가진 조선 여성, 그러나 불우한 결혼생활과 졸렬한 남편 김성립/ 평범한 여인이 될 수 없었다.
허초희의 세 가지 한 : 왜 하필 조선에 태어났는가? / 왜 하필 여자로 태어났는가?/왜 하필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
뛰어난 글과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로서 그녀 27에 요절 했지만 1천편이 넘는 시를 남겼으나 허균이 210편을 묶어 <난설헌집>을 엮음 ===> 중국 일본에 출판되어 가장 국제적인 시인
난설헌의 시에는 사랑노래가 그리 많지 않다.
제비는 처마 비스듬히 짝지어 날고
지는 꽃잎은 어지럽게 비단옷 위를 스치네.
동방에서 기다리는 마음 아프기만 한데
풀이 파래져도 강남에 가신 님은 돌아오질 않네.
4) 허균은 어떤 사람인가? 25살에 급제 (정 3품 내자시정)
벼슬을 싫어하면서도 쫓아다니고,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도 돌아가지 못하는 모순적 삶에서 고통
남에게 보이기보다는 자신에게 충실하고 솔직하고자 하였던 그로서는 성욕과 상례의 문제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문제를 온몸으로 부딪쳐야만 했다. (자기중심적)
===> p206 : 자신을 탄핵하는 자들은 성리학 신봉자이고 그들은 에절을 내세워 인간의 본성을 구속하려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의 법에 따라 살기를 거부하고 나름대로 주어진 삶을 천성에 따라 살겠다. / - p126 : 남녀간의 정욕은 하늘이 주신 것이요, 인륜과 기강을 분별하는 것은 성인의 가르침이다. 하늘이 성인보다 높으니 나는 차라리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지언정 하늘이 내려주신 본성을 감히 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주는 인정하되 사람됨을 나무라는 사람이 많음
- 중국 사신길과 오는 사신들 접대를 통해 중국 시인과 만남
3. 허균이 살았던 당대 사회적 분위기는 어떠했을까?
- 시인 작가들은 당대 사회의 사회적 분위기에 민감하다. 이들의 감수성은 작은 것을 크게 보고, 큰 것은 작게 하여 전체를 통관하려는 습성이 있다. 다른 시각에서 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어떤 사회에 살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 사회적 분위기 : 사림파가 훈구파의 전횡에 맞서 싸우다 사화가 있고, 선조대에 이르러 사람파의 정치력이 형성되면서 사화가 끝나고 정치권에 진출한 사림끼리 당쟁의 시작
- 임진왜란과 피폐한 전후 사회 (선조 ~ 광해군)
떡을 보내 준 친구에게 보내는 시
큰 은혜 고마워서 그대에게 보답코저
내 하는 말 그대는 시험삼아 들어보소.
그대 이 떡 가지고서 정승 집에 나아가면
정승께서 맛보시고 그 은혜 감사할 걸세
높은 벼슬 많은 녹을 힘써 내려줄 것이요
마침내는 남은 복이 자손에게도 미치리라.
그대는 보지 못했나, 행주의 정승님이 이조판서가 되어
이웃의 과일들로 아침 배 채우는 것을,
술잔 잡은 팔목은 꺾이지도 않아서
아침에는 동궁이요, 저녁에는 의정부라네
- 당시 기자헌은 이 시로 망신을 당하는데, 그의 아들이자 허균의 제자였던 기준격이 허준을 역적으로 고발
4. 그 사람을 알려면 주변 사람을 보라고 했다. 허균과 친구들 혹은 스승은 어떤 사람들인가?
허균 평전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따라서 이글을 읽으면 어떤 시대에 누구와 교류하며 살았는지 알 수 있고, 그들이 시인 허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 손곡 이달 : 천첩 소생 서얼로서 재주가 뛰어남 / 허균과 함께 글재주가 뛰어났으나 세속적인 예의범절을 차리지 않는 자유인 / 남들의 미움을 받음
날이 맑아 굽은 난간에 오렛동안 앉아 있으면서
겹문까지 닫아걸고 시도 짓지 않았네
담 구석의 작은 매화가 바람에 다 떨어지니
봄빛이 살구꽃 가지 위로 옮겨가는구나
- 사명당 : 불교의 세계 소개 : 삼척부사 있다 부처를 섬겼다고 탄핵
- 서애 유성룡
- 서예가 한석봉 / 화가 이정
- 매창 계랑
- 전오자 : 공주목사 당시 이재영등 소외된 벗 허적/조위한/권필/이안눌
- 후오자 : 정응운/조찬한/기윤헌/임숙영
5. 허균과 강릉 그리고 알바트로스
강릉(교문암과 교산)과 애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