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장 2025. 2. 11. 19:28

언덕

 

 

 

언덕

파란 눈썹과 같은 언덕

 

나는 언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지

무엇이든 그 언덕을 넘어서 왔거든

나는 언덕을 넘어오는 한 사람으로부터 나였으니까

 

그 한 사람을 무슨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지

그리하여 한번도 부르지 못하고

 

나는 그 언덕의 노래였으면 했지

주인이 없거든 노래는 갇히지 않지

그 언덕과 같지 노을 속에서

멀리 사랑이 보이지 붉게 타는 노을

사랑이 보이는 그 긴 언덕을 나는 사랑하지

 

나는 그 언덕을 넘어서 가지

누구든 언덕을 넘어서 갔거든

하늘 보며 작아지며 넘어갔거든

나는 보이지 않지 그대로

언덕이거나

적막이거나

 

나는 언덕을 넘어오는 한 사람으로부터만

나였으니까

 

 

장석남 시집 <내가 사랑한 거짓말> 10p~11p중에서 


언덕 너머를 꿈꾸는 사람은 낭만주의자다. 이 시는 언덕을 완전히 넘어가지 않고 언덕에 머물러 있다. 너머는 다른 세계니까 언덕은 경계쯤 되려나. 언덕을 넘어오는 이는 보통 다른 세계에서 오는 이, 시에서는 사랑하는 이라 한다. 아니 자신이라 한다.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저 언덕을, 그 언덕의 노을을 노래한다. 너머에서 온 이가 아닌 언덕을, 거기에 붉게 타는 노을을, 노래를. 난 언덕 넘어 왔고 언덕을 넘어 갈 사람이다. 나를 나이게 하는 건 그 언덕에서부터이니 사랑할 밖에 노래가 있는 이 세상을(한승태)